화려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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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1980년에 일어났던 '''5.18 민주화운동'''을 모티브로 제작한 영화. 2007년 7월 25일, 대한민국에서 개봉되었다. 제목은 당시 진압에 참여했던 육군특수전사령부 대원의 수기 제목명에서 따왔다.[1]'''우린 폭도가 아니야! 이 개새끼들아!'''
잊혀선 안 될 우리나라의 비극적인 역사를 사람들에게 다시 환기시킨 영화이다. 실제로 등장인물 거의 전원이 사망전대라 제목이나 엔딩이 매우 역설적이다. 특히 맨 마지막의 결혼식 사진 장면과 연관시켜 보자.[엔딩스포]
흥행에 성공하여 총 관객수 730만을 돌파했고 2007년, 광주광역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1.1. 고증
각종 차량/장비/화기, 공수부대 장병들의 칼같은 충정훈련 동작 등 디테일이 상당히 뛰어난 수준이다. 다만 2007년도에 처음으로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인지라 고증관련에선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데 현장 지휘관이었던 육군종합행정학교장(소장)의 계급장은 무궁화 받침이 달린 것이 달린 반면, 공수여단장(준장)의 계급장은 받침이 없는 구형이 부착되어 있고 작중 등장하는 공수부대원들의 헬멧도 시위 진압용 방석망이 달린 리프패턴 무늬가 아닌 일반 충정무늬 헬멧을 착용하고 있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없던 하이 베스타가 구급차로 등장하는[2] 등 일부 오류가 보인다.
또한, 박신애가 근무하던 병원이 광주보훈병원이고 앰뷸런스에도 '보훈병원'이 쓰여 있는데, 광주보훈병원은 5.18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고, '''1984년'''에 개원하였다.
극중 인봉에게서 엉터리 영화 추천을 받은 강민우가 강진우, 박신애와 1980년 5월 18일 낮의 광주시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데, 이주일이 주연으로 나온 '뭔가 보여드리겠읍니다'이다. 다만 이 영화는 5.18 다음 달인 6월 6일에 나왔다.
극중 흥수가 시민군에게 각종 군사 장비의 사용법을 교육하는 부분에서, 이 때 M18 연막탄도 언급된다. 인봉이 실수로 이 연막탄의 핀을 뽑는 바람에 연막탄이 격발하여 현장이 온통 하얀 연막으로 어수선해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에서 몇 안 되는 개그씬) 하지만 M18은 빨강, 초록, 노랑, 보라색 연막만 있고 백색은 없다. 연막탄의 일반적인 이미지인 백린연막탄에 집중하다 생긴 고증 오류로 추정. 사족으로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백린연막탄의 백색 연기는 맹독성이라 조금만 흡입해도 아주 해롭다.
특전사 병력이 광주로 이동할 때 영화상에서는 C-123 수송기 편대를 이용한 것으로 나온다. 이는 순서가 바뀐 것인데 광주에 처음 도착한 특전사 병력인 7공수여단 병력은 수송기가 아닌 기차를 통해 5월 17일에 광주로 이동했다. 이후 신군부는 광주에 병력 증파 결정을 내리고 11공수여단 병력을 증원했다. 이 11공수여단이 C-123 수송기를 타고 성남비행장(서울공항)에서 광주로 이동했다.
그리고 수송기에서 유태웅 상병이 지휘관에게 '북으로 침투하는 겁니까?'라고 질문했다가 '극비 사항이므로 도착하면 알게 될 것'이라는 답을 듣고, 그 다음에 햇빛 방향을 보고 옆의 후임이[3] '해가 왼쪽에서 뜨고 있다. 우리는 지금 남쪽으로 가고 있다'라는 말을 하자 의아하게 여긴다[4] . 즉, 투입 직전까지도 자신들이 어디로 투입되는지, 아니 시위 진압을 위해 투입되는 것조차 모르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당시의 특전사 병력은 혹독한 충정훈련, 즉 '''시위 진압 훈련'''을 하고 있었으므로, 자신들이 가는 곳이 광주임을 모를 수는 있어도, 시위 진압 임무를 위해 투입됨은 모를 수가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오는데, 알다시피 5월은 늦봄 내지는 여름의 초입으로, 입김이 나올 정도로 기온이 낮은 시기가 아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사진들만 봐도 모두 반팔이나 얇은 긴팔이 보인다. 무엇보다 광주는 강원도 산간 지역도 아닌 남부 지역으로, 항쟁 기간에 대단히 더웠다고 했다. 촬영을 겨울철에 진행해서 입김이 나온 것을 미처 편집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1.1.1. 시내에서 시가전과 기관총 여부
사람들의 편견과 다른데 시위대는 시내에서 시가전이나 기관총 사격 같은 과격운동을 하지 않았다.
김정한 박사의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소명출판, 2013)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사례 38)오후 4시 43분, 전남대학교병원 12층 옥상에서 젊은 사람 3~4명이 무엇인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도청 옥상의 공수부대원들이 혹시 발포라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한참동안 부산하게 움직이던 이들 사이로 LMG(기관총) 총신이 나타났다. 그것도 1대가 아니라 2대였다. 대규모 예비군훈련장이나 대대급 이상의 무기고에서 탈취해 왔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도청과 그 인근 옥상에 있는 계엄군을 겨냥해 가설했음이 분명했다.
위 38의 사례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기관총의 가설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민군이 적중률이 낮은 장난감 같은 M1이나 카빈소총으로 무장한 것과는 달리 중장비인 자동화기로 무장함으로써 도청옥상에 있는 공수부대가 위협받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제 게릴라로 변신한 시민군과 본격적인 총격전 또는 시가전을 벌이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시내 한 복판에서 벌어질 총격전은 시민의 피해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곳에 기관총이 설치된 후 공수부대가 금방 철수한 탓도 있었지만 '''시민군은 이 기관총을 한 발도 발사하지 않았다'''.」
김영택, 5.18 광주민중항쟁 연구, 서울: 국민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 185쪽
「(기관총 사격이 있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 필자) 이 시간 도청 안에서 현장상황을 정확하게 목격했던 본 연구자로서는 이 기록에 상당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계엄군의 발포 때문에 옥상에는 없었지만 도청 안에서 기관총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설치과정까지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한국일보 이상문 중방일보 황영철 기자로부터 '''LMG 발사는 전연 없었다. 또한 금남로 관광호텔 앞이나 충장로에서 계엄군과 시민군 간의 교전은 전연 없었다. 또한 소수의 시민군이 대응발사는 있었으되 어디에서도 교전의 상황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LMG를 발사할 수 있는 경험자를 찾기만 했을 뿐 실제로 발사는 없었다'''는 증언을 들었다. 또한 도청을 바로 내려다보거나 전남대학교병원을 건너다 볼 수 있는 전일빌딩 8층에 자리 잡은 전일방송국에서 종일 자리를 지키며 상황을 주시했던 당시 마삼열 전일방송국장은 같은 날 '''전남대 병원에 LMG를 가설하는 광경은 나도 보았으나 발포사실은 없었고 금남로 관광호텔 앞의 계엄군과 시민군 간의 교전은 터무니 없는 일이다'''라고 증언했다.」
김영택, 5.18 광주민중항쟁 연구, 서울: 국민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 185쪽
「시민군이 광주로 돌아와 전열조차 갖추지 못한 채 공수부대의 무차별 사격에 대응해 발사하고 나섰다. '''시가전이나 교전이라기보다는 목표지점도 없는 대응발사였다.'''」
김영택, 5.18 광주민중항쟁 연구, 서울: 국민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 182쪽
「'''당시 도청에서 취재하고 있던 본 연구자는 교전현장을 목격하지 못했고 함께 있었던 군 경 도청 관계자와 동료기자들로부터도 전연 듣지 못했다'''. 그리고 연구자는 다른 일행(도청 직원 및 기자)과 함께 오후 5시 24분, 계엄군의 철수에 앞서 도청 뒷담을 넘어 동국여관 골목으로 빠져나간 후 본사 사회부 소석 김충근 기자와 함께 충장로 입구를 거쳐 황금동 쪽으로 이동했었다. 연구자일행은 '''시가전의 위험은 전연 의식하지 않고 빌딩 옥상에 있는 계엄군 발포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는데 신경을 곤두 세웠었다'''.」
김영택, 5.18 광주민중항쟁 연구, 서울: 국민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 183쪽
보다싶이 영화에서처럼 시민군과 계엄군간의 치열한 총격전이나, 50구경 기관총에 의해 계엄군이 철수하는일은 없었다. 또한 시위대가 설치한것은 LMG로, 30구경 기관총혹은 7.62mm 기관총으로 추정된다.
사실 50구경 기관총의 화력때문에 계엄군이 밀렸다는것도 설득력이 없다. 계엄군이 투입한 병력 중에는 M113 장갑차도 있었는데, 해당 장갑차는 공용화기로 동일한 기관총을 장비했기에 화력에 밀린듯한 묘사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또한 5월의 사회과학을 비롯한 각종 서적에서도 시민군은 계엄군을 선제공격 하기보다는 시민들을 공격하는 계엄군에게 위협사격을 하는 쪽이었다. 즉, 시민군의 총격전은 창작된 셈.
이를 "어쩔수 없는 영화적 허용"으로 볼수도 있겠으나, 비판적인 측은 "계엄군의 범죄는 (심의상 이유로)순화되고, 시민군의 공격성은 과장되었다"는 비판을 피할수 없는 부분이다. 시민군의 주요 인물들을 모두 창작하여 창작된 인물들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한것과 함께 아쉬운 부분. 따라서 혹자는 "결국 이 영화의 의미는 5.18을 재조명 한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2. 등장인물
'''[배우 명]'''
2.1. 광주시민
예비역 대령. 극중 공수부대 김상원 대위가 가끔 방문해서 '선배님'이라 부르며 존대하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특전사 출신. 계급은 시민군을 소집해서 연설할 때 밝혀진다. 김 대위의 방문 장면에서 스스로를 '실패한 군인'이라고 한다거나, 전 장군의 행보를 우려하는 점을 보아 부마항쟁 혹은 12.12 군사반란의 영향으로 군복을 벗은 것으로 추정된다.[7] 민우가 근무하는 택시회사 사장으로 무남독녀 신애를 끔찍히 사랑한다. 올곧은 성품의 소유자로서, 과잉진압으로 쓰러져가는 시민들을 위해 시민군을 조직/지휘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다. 그리고 중반에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8] MG50 기관총으로 도청에 집중 사격을 가하여 주둔중인 계엄군이 일시 철수하게 만드는 폭풍 간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때 날아드는 제압사격에 어쩌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후퇴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일품이다. 하지만 그 김상원 대위가 진압군으로 파견되고[9] 최후의 결전 때 김상원 대위와 짧은 만남을 갖다가 다른 대원들의 사격에 사망한다. 5.18 당시 택시 행진[10] 으로 광주 시내에서 계엄군을 최초로 몰아낸 기사들이 당초 모티프였을 것으로 추정. 당시 택시기사이자 시민군 상황실장이였던 박남선도 모티브로 보인다.[11] 또한 배우 안성기는 ROTC 장교 출신이라 대본 없이도 군사용어와 무기 운용을 영화에서 척척 소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코멘터리에서 왈, '각이 나온다'고.
박흥수의 딸이며 광주보훈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따뜻한 성격의 소유자로, 항쟁 기간 동안 많은 부상자들을 돌본다. 민우를 죽이려는 진압군을 엉겁결에 총으로 쏴 죽인 후 잠시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마지막 날 밤, 차량을 타고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며 시민들에게 호소방송을 한다. 전옥주[12] 라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다. 여담으로 계엄군에게 쫓기는 장면에서 벌벌 떠는 장면에서 이요원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공포에 질렸다고 한다. 모조 총이지만 총알이 날아오고 총소리가 나는 게 너무 무서웠다고.
형의 사랑을 받으며 미래의 법관을 꿈꾸는 고3 모범생. 평범하게 공부하는 고등학생[13] 이였으나 절친한 친구 상필이 아무런 이유 없이 진압군에게 맞아죽은 사건을 계기로 전교생을 이끌고 시위대에 가담하지만, 5월 21일 도청 앞 집단발포 때 철수한다며 페이크를 치고 총질을 해댄 진압군의 총을 맞고 숨을 거둔다. 캐스팅 목록상으로는 주연으로 분류되는데, 그런 것치고는 분량이 상당히 적은 편이다. 인물 모티브는 광주대동고등학교의 전영진. 희생자 중 한 명으로 항쟁 당시 사망했으며, 영화 속 진우처럼 친구의 죽음에 분노해 시위에 나섰다가[14] 5월 21일 발포 때 희생됐다.
민우의 택시회사 동료. 민우보다는 연상. 월남 방위 [15][16] 출신에 허풍이 강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분위기 메이커다. 사건 마지막 날 시민군을 해산할때 주변인들의 권유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지만, 결국 어린 아들과 아내를 뒤로 하고 시민군에 재합류한다.[17] 이 때 밤에 집에서 몰래 나가기 전에 어린 아들을 마지막으로 안고 오열하고, 아내 역시 자는 척 하면서 흐느끼는 장면이 꽤나 슬프다. 전투 중 총상을 입고 김 신부에게 유언을 남긴 뒤 전사하고 만다. 서남 방언 애드립이 그야말로 절정에 달한다. 삭제 장면 중에 그의 분량이 많은데, 너무 유머러스함이 폭발해서 전후 장면들에서 격해진 감정과 분위기를 깨기 때문에 많이들 잘렸다고.
동네 양아치. 삭제장면에 나오는 대사에 따르면, 학력은 중학교도 안 간 국졸이라고 한다. 인봉의 택시에 여자친구랑 타서 똥을 묻히는 등 인봉과 한차례 푸닥거리를 하지만, 같이 시위에 참여하면서 어찌어찌 친해지고 둘이 콤비를 이루고 다닌다(삭제장면을 보면 원래는 둘이 같이 다니는 장면이 더 많았다). 인봉과 함께 대표적인 개그 캐릭터. 참고로 인봉과 시위 현장에서 재회했을 때는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묘하게 낯이 익소?" 정도의 대사만 한다. 그리고 물러가는 계엄군 뒤에 대고 "가서 똥이나 쳐 먹어라!"라며 소리지르던 와중에 똥이라는 키워드로 서로를 기억해낸다.[18] 도청 전투에서는 총상을 입고는 무전기로 인봉에게 "처자식이 있으니 투항하라"고 하지만, 대답이 없는 인봉을 향해 울부짖다가[19] 계엄군의 총에 전사한다. 사망하기 전 무전기를 통해 흥수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덕분에 양아치 장용대도 인간이란 걸 느꼈다"고 말하는 장면은 손에 꼽히는 명장면 중 하나다. 또한 결전의 날 직전 인봉과 함께 멀리 계신 부모님을 향해 큰절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인봉이 절을 하고 일어난 후에도 용대는 그대로 엎드려 있었고, 왜 그런가 가서 보니 엎드린 채 오열을 하고 있었다. 위의 인봉이 아들을 안고 오열하는 장면과 더불어 개그 캐릭터로만 보였던 이 둘의 또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슬픈 장면들이다.
민우 형제와 신애가 다니는 성당의 노신부. 5.18의 배경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 해설역 같은 사람. 전투와는 거리가 멀 것처럼 보였지만 "뭐해요? 나도 총 한 자루 주세요. 좋은 놈으로다가."라고 말하며 자신도 전투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전투에서는 죽어가는 인봉 옆에 앉아서 인봉의 유언을 들어준다. 모티브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조철현 비오 몬시뇰. 영화 속 마지막 장면에 나온 인물들 중 김상원 대위와 함께 전사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으나, 사진 장면 속 구도로 보아 마지막 도청 전투 때 전사하긴 한 것 같다.[21] 실제 조철현 비오 신부는 2016년에 선종했다.
계엄군에게 아들을 잃은 맹인 할머니. 군인들에게 잡혀가다가 겨우 탈출한 강민우에게 밥과 아들의 옷을 제공한다. 나중에 아들의 죽음을 알고 "내 아들이 어떻게 폭도냐"고 울부짖는다. 강민우에게 밥을 해준 것 외엔 스토리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 캐릭터이지만, 당시 탄압과 폭거로 인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죽은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얜 창수(아들 이름)아니여. 우리 창수는 코도 오똑하고 잘생겼어. 얘는 창수 아니여."라며 현실을 부정하는 장면은 그렇게 슬플 수가 없다. 나중에 도청 진압작전 직전 마지막 밤 장면에서 아들의 영정을 안고 울고 있는 모습으로 한 번 더 등장한다.
이분의 아들 창수는 사실 신애의 병원에 피투성이가 되어 실려온 사람으로 김 의사가 "피 확보되는 대로 수혈하라"고 지시한 장면에서 등장한 환자. 삭제장면에서 자기 죽냐고 물어보고 신애가 자신의 목걸이를 풀어서 손에 쥐어주며 "이걸 쥐고 있으면 창수 씨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해주는데,[22] 본 영화에서는 편집되어 그가 창수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없다. 얼굴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모를까. 그런데 사실 이 장면이 있어도 창수라는 사실을 알기 힘들어서 삭제된 거라고 한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루즈하게 나오는 장면이라 분위기가 좀 늘어지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베테랑 배우답게 제작진들이 그녀의 연기에 많이 감탄했다고 한다. 맹인 역할이라서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으며 연기한다든가. 비중이 적음에도 그 아우라가 촬영장을 압도했다고.. 메이킹 영상을 보면 오열 장면을 컷한 이후에서는 촬영장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진우의 친구이다. 하지만 공수부대인 유태웅 상병한테 이유없이 폭행을 당해 사망한다. 유 상병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자긴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이라며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빌지만 이에 유태웅 상병은 "잘못 했으면 맞아야지 X발놈아!" 라고 하며 진압봉으로 머리를 때려 죽인다.[23]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던 진우가 전교생을 선도하여 시위에 참여한 계기를 마련한 인물.
진우의 친구로 상필이가 세상을 떠난 후 진우와 함께 시위를 한다. 진우마저 사망하자 친구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시민군에 참여하여 싸우게 된다.[25] 중반에 용대와 같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계엄군의 버스 습격을 목격하기도 했다.(원기는 용대가 똥 쌀 때 경계하느라 둘은 살아남았지만, 덕분에 버스 운전사와 승객들이 총에 맞아 죽는 걸 목격하면서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최후의 전투에서 정 선생님이 자기를 구해주다가 사망하는 바람에 오열한다.
- 정 선생님(손병호): 학생들을 아끼는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학생들의 시위를 막으려고 하는데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26][27] 진우와 학생들한테 치약을 발라준다.[28] 치약을 발라 최루탄 영향을 줄이는 법도 알고, 나중에 최후의 전투에서 시민군에 참여하는 점을 보면 4.19 세대이거나 6.3 세대인 것으로 보인다. 도청 항쟁에서 멘붕하여 정신을 놓고 있는 원기를 일으켜 데려가려다 총에 맞고 원기와 같이 쓰러진다. 엎드린 자세로 쓰러져있는 와중에도 원기의 입을 막아서 아무 소리를 내지 않도록 (즉, 확인 사살을 위해 다가온 계엄군이 원기는 이미 죽은 것으로 착각하도록) 하고 자신은 계엄군에게 확인사살 당한다. 원기는 자신을 구하다 희생당한 선생님을 보며 오열한다.
지적장애인. 정신이 온전치 못한 탓에 상대가 얼마나 무서운 줄도 모른 채 공수부대에게 장난을 치며 까불대다가[31] , 결국 심기가 거슬린 그들에게 다구리를 당해 살해당한다.[32] 모티브는 광주항쟁 최초 사망자인 김경철.[33] 그리고 그의 시신은 다음날 아침 광주역 앞에서 리어카에 실려 있는 채로 발견된다.[34]
병조의 아버지다. 민우 형제의 집 가까이에 사는 이웃이며, 아들을 잃은 후 시민군에 참여한다. 최후의 전투에서 싸우다가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여담으로 형편이 좀 되는 집안이었던 듯, 집에 TV를 가지고 있었다. 평화로웠던 시절을 다루는 일상 파트에서,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전설의 고향>을 보러 그의 집에 찾아온 마을 사람들에게 시청료를 징수하는 장면이 있다. 여담으로 배우 유형관 씨는 45분경에 나오는 도지사 목소리도 맡았으며, 울면서 "병조야!"를 외치는 장면에서 실수로 "인봉아!"를 외치는 엄청난 NG를 내는 바람에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의사. 신애와 함께 시위대에 참여해서 부상을 입은 시민들을 치료한다. 응급실에 오는 사람들이 전부 죽어나가자 "어째 오는 사람마다 다 죽은 사람이냐!"라며 울분을 토해낸다. 그래서 구급차를 타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직접 데리러가기로 결심한다. "같이 갈 사람 없냐"고 외치지만 돌아오는 건 무응답. 이때 신애가 용감하게 같이 가자고 해서 함께 구급차를 타고 부상자를 데리러 간다. 그러나 부상당한 시민군을 구급차에 태우고 자기도 타려고 하는 순간 "저것들도 한패 아니야? 미친 새X"라고 분개한 공수부대의 총격에 머리를 맞고 즉사한다. 참고로 정인기는 그때 그사람들에서도 총 맞고 사망하는 역[35] 을 맡기도 했다. 배우개그?
2.2. 계엄군
최순기 준장의 상관. 특전 사령관 혹은 계엄 사령관으로 추정된다. 최 준장과 달리 잔혹한 진압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즉, 계급은 소장임에도 리더의 모습보다는 주변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다. 막판에는 최순기가 "진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계속 설득하자 도청에 공수부대 투입을 명령한다.
- 고은섭[43] 일병(명규): 계엄군의 말단 병사 중 한 명으로 유 상병에게 "해가 왼쪽에서 뜨고 있습니다. 우린 지금 남쪽으로 가고 있습니다."라고 알려준 인물[44] . 계엄군 중 한 명으로서 명령 때문에 광주 시민들의 진압에 나서기도 했지만 정작 작품 곳곳에서 보이는 등의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인물. 최초로 계엄군이 광주시민들에게 발포하기 전에 인봉에게 섹드립을 당했다(...)[45]
3. 비평
- 시민들이 군인들에게 짓밟히는 참상에 집중한 나머지, 5.18의 원인과 경과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평이 있다. 영화 안에서 김 신부(송재호)[46] 나 박흥수의 대사를 통해 설명되긴 하지만, 충분하다고 보긴 힘들다. 오히려 일개 신부에 불과한 김 신부가 줄줄이 배경을 읊는 것이 광주 시민들의 시선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 무슨 싸구려 다큐 보는 느낌이었다고 혹평하거나, 광주 시민들 입장에선 '마른 하늘의 날벼락'같은 공수부대의 만행의 느낌을 망쳤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당시 광주 시민들의 시점으로 제작된 영화이며, 2시간 남짓한 시간에 집중해야 하는 한계도 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47] 실제로도 광주시민들에게는 정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사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점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배경설명으로 부산항에 미합중국 해군 항모가 온다길래 미국이 우리를 도우러 온 줄 알고 기뻐한 시민들과, 그런 거 없다고 말하는 박흥수의 대사가 있긴 했으나 대사 한 줄 씩이었다.[48]
- 드라마적 이야기 설정은 나쁘지 않았으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가공 인물이면서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핵심 지휘부 역할을 맡은 탓에 스토리에 따라 사실관계가 상당히 크게 뒤틀렸다는 것도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었다. 또한 신파적인 억지 감동을 주려는 듯한 연출이 심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 영화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폴 그린그래스의 명작 블러디 선데이와 비교하면 이런 단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 5월 21일 도청 집단발포 장면은 사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12시 정오까지 계엄군이 철수한다는 방송에 시민들이 도청 앞에 운집한 것 까지는 같으나, 12시가 되었음에도 철수하지 않자 시민들이 분노하여 도청 진입을 시도하다가 1시에 애국가가 울려퍼지며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벌어졌다는 실제 사실은 완전히 생략되었다.[49] 영화에서는 12시가 되자마자 계엄군이 약속을 어기고(어쩌면 의도적으로 학살을 위해) 발포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바로 앞 장면이 희망에 찬 시민들이 전진하고 인봉이 계엄군에게 개그를 치는 등 밝은 장면인 걸 생각하면 비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각색한 듯 하다. 영화평론가 김경욱은 저서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에서 이 부분을 신랄하게 깠다.[50]
- 시민군의 행적을 누락시켰다. 광주문화방송과 KBS광주방송총국, 세무서 건물 등을 방화한다던가[51] , 금성사 대리점이나 빵 공장을 습격하는 등의 폭력적 양상을 띈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이 부분은 앞서 서술했듯이 당시 계엄군의 만행이 너무 막장적이었고 계엄군에게 가족과 지인들을 잃은 광주 시민들이 매우 많아 시민군들 역시 눈이 뒤집힐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정확한 당대 묘사는 스케일은 작아도 차라리 드라마 제4공화국이나 제5공화국이 더 자세하다고 할 수 있겠다. 거기서 진압군의 모습과 함께 시민들의 반응 및 행동도 자세히 보여준다.[52]
- 공수 부대 대령 출신으로 등장하는 시민군 대장 박흥수(안성기 분) 자체가 전적으로 허구의 인물이다. 실제로 시민군 지휘자 중에 공수 부대 간부 출신이 있었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고, 없는 쪽이 유력하다. 김상경이 연기한 강민우는 윤상원을 나타내고 이요원이 연기한 캐릭터는 박신애는 전옥주와 박기순을 상징하지만, 도대체 박흥수는 누구를 모티브로 했는지 알 수 없다는 평이다.
-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을 담아내지 못했다. 강경파는 결사 항전, 온건파는 무기 반납 및 협상을 주장했다. 실제로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에 온건파와 강경파는 극심한 대립을 했고 강경파가 온건파를 몰아내고 결사 항전을 하다가 계엄군에 체포되거나 사살당했다. 영화상에서는 시민군이 굉장히 화기 애애하고 호흡이 잘 맞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의견 대립이 굉장히 심했고 논쟁만 하다가 날이 가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이 부분 역시 제5공화국에서는 비교적 잘 묘사하고 있다. 단 위의 각주에서도 나와있지만, 이는 감독이 온건파였던 분들도 항쟁에 참여한 민주화 투사들인데 그분들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 같고,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없앤 것이라고 한다.
- 시민군이 아시아 자동차 공장에서 버스, 장갑차, 트럭 수 백 대를 노획했던 사실도 누락되어 있다. 실제로 시민군들은 여기서 탈취된 차량들을 이용하여 무기를 탈취했다.
- 장갑차를 몰던 시민군의 모습을 나타내지 못했다. 5.18 당시를 기록한 사진들 중에는 시민군이 장갑차를 운행하는 사진도 있다.
- 인봉(박철민)의 아내가 뜬금 없이 동남 방언을 쓴다. 광주광역시가 배경이고, 광주광역시를 주제로 한 영화인데다가 그 당시 영호남 지역갈등이 워낙 심해서 양쪽 지역 간의 연애+결혼율도 상당히 낮았는데도 불구하고, 서남 방언을 쓰지 않고 동남 방언을 구사하는 것이 이상하다 못해 뭐하자는 시츄레이션이라는 평가들이 대다수일 정도.[53]
4. 뒷이야기
- 진압군과 시민군 사이의 교전 장면이 너무 과장되었다는 반론도 있었다. 정확히는 과장과 축소 모두 나타난다. 일단 교전 장면의 연출이 지극히 부실하였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총 몇 발만 쏘고 만다. 특히 엑스트라들이 총 맞고 쓰러지는 연기는 참... 교전 장면이 과장된 것 역시 사실이다. 시민군이 총기로 무장하고 저항하기 시작한 뒤에도, 양상은 어디까지나 계엄군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지, 대등한 상태에서 양쪽이 '치열한 교전'을 벌인 것은 아니었다. 사망자수는 시민 165명(+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행방불명자 처리된 65명)[54] , 군인 23명, 경찰 4명인데, 군인 희생자 23명 중 13명은 무전 주파수가 달라 향토사단, 광주 상무대 소속 교도대들과 "오인 교전"을 벌인 끝에[55] 죽은 경우이다. 그리고 숨진 시민들이 전부 시민군이었던 것이 아니라, 우연히 지나가다가 혹은 그 자리에 있다가 폭력을 당해 희생된 사람이 많았다. 장애인, 어린이, 청소년 등. 심지어 임신부가 조준사격을 당해 사망한 끔찍한 일도 있었다. 자료만 놓고 봐도 '치열한 교전' 은 절대 아니다. 정작 실제 사건을 경험한 광주 시민들은 "영화보다 더 끔찍하고 잔인했다"는 평이 우세. 광주 학살 항목을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 현대사의 비극임에도, 일부에서는 여전히 예민한 이슈인 탓에 개봉 전/상영 중에 걸쳐 이런저런 논란이 많았다. 모 단체에서는 영화의 왜곡을 들어 소송을 준비한다는 기사들도 나왔다. 관련된 후속 기사들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냥 별일 없이 끝난 듯.
- 이와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2007년 D-WAR 다음으로 많은 관객 수를 기록했다. 최종 누적 관객은 730만 7,993명. 2007년 개봉한 한국 영화 중에서 흥행 2위를 기록했다. 덕분에 2007년은 여러 의미로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한 해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제작사는 이만한 흥행 대박에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큰 수익을 거두지 못하였다니 안습.
-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스태프들이 엑스트라로 참여하기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극장 씬. 김상경 뒤에 앉아 있는 사람은 이준기의 매니저였다고(...) 그 외에 매니저들이 참여한 장면이 여럿이다. 또 시민군 교육 장면에서 폼잡고 앉아 있다가 흥수에게 "선글라스를 벗으라"며 한 소리 듣자 바로 꼬리 내리고 벗는 사람의 정체는 까메오 출연한 감독이다.
- 실제 자료 사진들을 구도에 많이 활용했다. 예를 들어 18일 전남대 정문 앞에서 군인들이 학생들에게 달려드는 장면, 관이 안치된 상무관 장면 등.
- 호남 지방에서는 상영 중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특히 중, 장년 층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작중에서 본 사건을 광주 '폭동'이라고 부르는 언플 왜곡보도[56] 가 나오는 장면이 나올 때에는 욕설이 나오기도 했다고. (반면 주인공 민우가 계엄군에게 잡혔다가 탈출하는 씬[57] 에서는 극장에서 박수 갈채와 "잘 한다!"하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주로 노인들.) 독재 권력에 의한 일방적인 폭력으로 200여명의 사망자와 3천 명 이상의 부상자가 나온 이 사건을 불과 30여 년 전 직접 경험한 이들의 이런 반응은 절대 지나친 것이 아니다.
-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엔딩 크레디트에 나온다. 체코 필하모닉 교향악단의 연주로, 본래 곡보다 더욱 깊고 애잔한 분위기를 내어 호평을 받았다. 들어보기 실제 이 노래는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결식을 위해서 작곡된 노래이다.
- 김지훈 감독은 연출력이 미흡하다는 평을 받았다. 앞서 방영됐던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의 묘사가 더 디테일했다는 의견도 있다.
-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도 만들어졌다.
- 영화가 한창 상영되던 당시에 군대에서 이 영화를 휴가 기간에는 보지 말 것과 이미 본 사람들의 수를 파악하는 행위가 곳곳에서 있었다. 그리고 이미 영화를 본 사람들은 따로 정신교육을 받았다. 군은 또한 "지휘관급 10여명에게만 총기를 지급하였으며, 영화의 총기 발포 사실은 허위"라는 내용의 특별 정신교육자료를 일선 부대에 배포하였다.[58] (차라리, 당시 유연한 판단을 보여준 육군 제31보병사단장이었던 정웅 장군[59][60] 을 재조명하는게 더 나았을 것이다.)
- <화려한 휴가>를 촬영한 세트장은 광주광역시의 광주과학기술원 뒷편의 공터에 있었다(정확히는 '은혜학교' 뒷편).[61] 한동안에는 80년대 당시의 5.18 세트를 잘 재현해 놓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부 파손되었을 때에도 복구/재개장 하는 등 관리가 잘 되는 듯 싶더니, 어느새 방치된 상태로 버려졌고, 태풍 피해로 인해 세트장 일부가 파손되었을 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폐허처럼 버려졌다(...). 결국은 광주과학기술원의 부지를 넓히거나 확작으로 인하여 오래 전에 폐쇄하였다. 다만 해당 부지가 첨단과학단지 부지에 있었던 만큼, 추후 다른 용도로 쓰여야 될 부지이기는 하였다. 2017년 현재 이 부지 일부분에 광주과학기술원이 확장하였고, 광주외국인 학교[62] 가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나머지 부분은 아직 공터로 남아있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를 찍은 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세트장에 대한 인식이 다시 제고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촬영에 쓰인 차량들[63] 은 안면도의 백사장에 버려진 것으로 보인다. #[64]
- 세트가 아닌 실제 장소에서 찍은 장면은 대부분 군산시, 전주시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80년 당시의 풍경이 남아 있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고. 예외적으로 상무관[65] 과 도청 장면[66] 은 실내 장면이고 해서 실제 장소에서 찍었다. 제작진들의 감회가 남달랐다고. 실제로 옛날에 이곳에서 극중 인물들과 유사한 대화를 나누고 고민들을 하고 했을 테니까 말이다. 김상경이 코멘터리에서 실제 그분들이 하늘에서 보고 있다면 '어, 이 사람들 우리가 했던 거 하네?'하면서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라고 말하기도 했다.
- 상당한 흥행작이지만, 제작사의 채권 문제로 꼬여서 김상경은 7년이 지난 2014년까지도 출연료를 지급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제작사가 아예 휴업 상태라 소송 걸기도 안 좋아서 사실상 포기 상태인 듯 하다. #
-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와 같은 이유[68] 중국에서는 개봉불가 판정을 받았다.
- 이 영화가 개봉하고 10년 뒤인 2017년 8월, 같은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삼은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하여 흥행에 성공하였다.
- 2017년 이명박 정부 때 작성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공개되었는데, 이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이준기, 김규리, 김가연 등이 명단에 올랐다.
-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몇몇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다. 심지어 박근혜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장면이 9시 뉴스를 타기도 했다.